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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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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인형의꿈
 
   작 가    큐브릭    작 성    2008-09-29 00:23:32
   조 회    33    추 천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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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인형의 꿈 1. 무변의 세상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메마른 대지. 메말랐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푸르고 활기가 넘치는 이 도시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대지에 가상으로 꾸며진 그래픽이다. ..
 
인형의 꿈



1. 무변의 세상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메마른 대지. 메말랐다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푸르고 활기가 넘치는 이 도시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대지에 가상으로 꾸며진 그래픽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무런 의심도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가상현실은 구축된 후 단 한번밖에 붕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단 1분 동안. 물론 그 현상을 목격한 몇몇 현명한 자들은 이를 눈치 채고 정부에 반항하고 있지만, 정부는 질병에 의한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고 민간인들을 세뇌시키고 있고, 현명한 자들을 반란분자로 몰아 가둬놓고 있다. 그러한 정부는 기계에 의해 세뇌되고 있는 세상. 아무도 모르게 하나의 ‘두뇌’에 의해 독제 되고 있는 세상은 지극히 지루하게,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 똑같은 세상에서 아직 소수의 사람들이 부르짖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사실은 아니다”
라고…….

2. 시작

어제와도. 일주일 전과도. 일 년 전과도 똑같은 시간에 해가 저물었다. 어두운 골목은 주점들의 손님유추를 위한 화려한 불빛으로 빛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유독 독특한 보랏빛을 내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골목 구석진 자리에 자리 잡은 주점에 어김없이 70을 훨씬 넘긴 듯 보이는 늙은 여자가 들어간다.
밖에서 보던 그 화려한 보랏빛과는 다르게 주점의 안에는 오래된 ‘릭’이란 글자만이 손님을 맞이했고, 매우 낡고 으스스했으며, 손님이라곤 방금 들어온 그 늙은 여자가 전부였다.
“늘 먹던 것으로 부탁하네.”
주름지고 수척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빛나는 금발과 맑은 눈을 지닌 노인이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그러자 곧 종업원은 따뜻한 나쵸 치즈와 나쵸, 그리고 100년도 더된 1980년산 포도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거 번번이 손님이 없어 벌이는 어쩌나?”
노파가 그에게 물었다.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고 사장님은 말씀하십니다만, 사실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
말을 하며 종업원이 살짝 웃어보였다. 
“허허, 그 양반은 여전하구만 ”
노파가 덩달아 웃으며 옆에 있는 소형 프로젝터를 켜자, 테이블 위에 입체적인 영상이 나타났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어느새 테이블 세팅을 모두 완료한 종업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임무완수를 알리고 있는 중에 프로젝터의 화면이 선명해지며 떠들기 시작했다.


  『 30년 전, 복제인간 프로젝트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던 캐드만 전 수상이 오늘
  가석방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캐드만 전 수상은 당시 33세의 젊은 나이로
  수상이 되어 많은 훌륭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다 놓았지만, 비밀리에 시행된
  복제인간 프로젝트로 인해 인권 침해 등 여러 가지 혐의가 겹쳐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새로 부임한 엘리자베스 수상의 특별 사면으로
  엘론 전 수상을 포함 총 130명의 정치인 범죄자들이 가석방 되었다고 합니다. 』

화면은 열심히 떠든 다음 캐드만 전 수상의 모습과 엘리자베스 현 수상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었다. 한쪽에는 교도소에서 나오는 전 수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저 여자는 매번 사고만 치는구먼. 껄껄 ”
노파가 아까전과는 다른 거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 이 노파가 재미있는 문제를 하나 내줄까 ?”
노파가 멍한 표정으로 프로젝터를 바라보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따분해보이던 그 종업원은 반색을 하며 노파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 문제가 뭡니까 ?”





















“ 자네는 복제가 된 생물들에게 영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
3. 감금


쾌쾌한 향기를 풍기는 지하 수용소. 공간을 밝히기 위해 설치되었던 조명기구는 이제 제 몫을 하지 못한 체 희미하게 깜빡거리며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는 이미 다 말라서 굳어버린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고, 가끔씩 풍기는 철의 냄새는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일렬로 나열된 철창 쳐진 방들에는 남녀노소 불문한 나신의 사람들이 갇혀있었다. 이성을 잃은 자들, 슬픔에 잠긴 자들, 분노에 치를 떠는 자들이 섞여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혼잡한 상황 속에서 유독 조용한 한 여자가 보인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문에 'E'라고 새겨져있는 방에 혼자 앉아있었다. 생기 있는 금발에 뚜렷한 이목구비, 군살 없는 몸은 그녀의 주위에 있는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단정하고 관리가 잘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맞은편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욕지거리를 마구 내뱉고 있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그녀가 탐탁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론』
스피커에서 누군가를 호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난 엘론이 아냐.”
그녀는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스피커는 뒤이어 네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권, 네로, 릭, 엘리자베스 테레사』
차례대로 네 개의 방문이 열렸고. 그들은 방 문 앞으로 나왔다. 엘론이라 불린 그녀도 그들보다 조금 늦게 방 밖으로 나왔다.
『호명된 자는 A-13구역으로 집합할 것. 이상.』
그들은 차례대로 복도에 선 뒤, 수용소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른 건물과 이어지는 복도에는 화살표가 방향을 표시해주고 있었고 그들은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갔다. 한 20분쯤 걸었을  때 누군가 말을 했다.
“난 릭이라고 하네."
푸석한 금발에 통통한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난 네로라고 해. 거참 입이 근질근질해 죽을 뻔 했는데 잘됐군.”
은발에 장난기 많아 보이는 얼굴, 그리고 남들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 보이는 훤칠한 키의 청년이 말을 이었다.
“나... 난... 엘리자베...”
“도대체 이놈의 복도는 얼마나 긴 거야!”
갈색머리의 여자의 말을 못 들었는지 네로가 큰소리로 외쳤다.
“남의 말은 끊는 게 아니다.”
엘론이라 칭해진 여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맞는 말일세. 자넨 분명 엘리자베스 테레사 양이겠군?”
말을 가로막힌 테레사는 눈물이 맺힌 눈을 한 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 사람 말 한번 끊었다고 뭐라고 하긴... 구닥다리들”
네로가 말했다.
“다시 말해봐.”
“자. 제군들 주목!”
엘론이라 칭해진 여자가 네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려 할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흑인 장교가 그들의 대화를 막았다.
“13구역 소집원. 모두 왼쪽에 있는 캐비닛에서 옷과 명찰을 착용한다. 실시!”
흑인 장교가 복도 왼편에 나있는 작은 방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그들은 푸른색 단벌옷을 입고, 작은 화면이 달려있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들이 입은 옷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옷이었다.
“명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라”
목걸이에 걸린 화면에 커다란 빈칸과 알파벳들이 나타났다. 커다란 빈칸에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이름이 씌어져 있었으나, 수정이 가능했다.
『ELON (엘론)』
자신의 이름을 한참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에게 릭이 다시 말을 걸었다.
“자네 이름이 엘론 이었군.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명찰에 손을 가져갔다.
“제 이름은 엘론이 아닙니다.”
『NOEL (노엘)』
“노엘입니다.”
노엘은 알 수 없는 우울한 미소를 지으며 릭을 바라보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웃고 있는 미소와는 너무나 다른 우울한 눈빛을 하며 릭을 바라보았다.
“저...”
릭의 뒤에서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매우 불안해하며 자신의 명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가... 화...확인을 누르려다... 실수로...전부...지워버렸는데... ... 다시 써주...실... 수 있나요...? 제... 제가... 글씨를... 잘... 모르거든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는 매우 떨렸으며, 말도 심하게 더듬었다.
“엘리자베스 테레사 양이였죠?”
릭은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자... 어디보자... 엘리...자...”
“자 이제 그만! 이제 13구역으로 날 따라와라”
“이런 젠장! 아직 다 쓰지 못했는데! 미안허이...”
흑인 장교의 불호령과 함께 명찰엔 이름이 박혔고.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가 되었다.
그녀는 완전히 울상이 되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던 네로는 마구 웃었다.
  『ELIZA. T』
  “꾸물거리지 말고 13구역으로 간다!”
다시 한 번 내려진 불호령이었다. 릭은 금방이라도 쓰려져 울 것 같은 엘리자를 부축하며 13구역으로 모두 발걸음을 옮겼다.

    『 A - 13


    2 0 4 5 / 0 9 / 0 4』

일반인의 키에 4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문에 큼지막하게 글씨가 적혀있었다.
날짜를 표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밑의 글씨는 깜빡이며 불안정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이제 사회 적응 훈련을 실시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문 앞에 선 장교가 그들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제 이곳에 온 너희들은 이전에 실시되었던 사회 이론수업에 참여하여 높은 성적을 올린 자들로서 13구역에 마련된 가상현실을 통해 사회적응 훈련을 실시할 것이다.”
그의 말을 듣던 릭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각자 2인 1조로 한 집에서 생활할 것이다. 릭과 함께할 자는 3번방으로. 엘리자와 함께할 자는 7번방으로 들어가라. 이상!”
“이거이거, 우리 몸매 좋은 금발 이쁜이와는 한방을 같이 못 쓰는 건가 ?”
장교의 말을 듣고 있던 네로가 노엘을 바라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다.
“지저분하군.”
노엘이 눈을 치켜뜨고 쏘아붙였다. 그리곤 릭에게 다가와 그를 끌고 커다랗게 ‘3’이 새겨져있는 출입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쳇...”
네로는 거칠게 엘리자를 끌고 7번 출입구로 들어갔다.


“이곳은 카메라와 녹음기 천지라네.”
한참을 걸어가던 릭이 노엘을 향해 말했다.
“자네에게 할 얘기가 있네. 거주지로 들어가게 되면 얘기해 주도록 하지.”
“당신은 이곳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군요.”
노엘은 변태를 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게 예의를 갖춘 어조로 노인에게 말했다.
“그것 역시 방에 들어가 말해주겠네. 그들은 일단 가상현실로 들어가면 탈출시도를 제외하고는 우릴 건드릴 수 없을 테니 말이네.”
릭의 말을 끝으로 복도를 울리는 소리는 두 사람의 발소리 뿐 이었다.
한참을 더 걸어서 그들은 마침내 가상현실에 도착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푸른 하늘, 그리고 자연과 어울리게 배치되어 있는 건물들이 수용소에서의 그 칙칙함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던 노엘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 첸 듯 릭에게 물었다.
“권 씨는 어떻게 된 거죠? 명찰을 달 때부터 이미 옆에 없었던 것 같은데...”
수용소에서 나올 때는 분명 5명의 인원이 복도로 나왔는데. 그 이후 2인 1조로 편성된 것도 그렇고, 당연하다는 듯이 한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걸세.”
릭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자네는 수용소로 옮겨진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그는 매우 많은 문제를 일으킨 자였어.”
노엘은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죽었단...말씀이십니까?”
“어쩌면, 죽는 게 더 나을지 모르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네.”
릭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망할 만큼 푸른 하늘은 그들의 침묵과는 무관하게 밝은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많은 건물들을 지나와 드디어 3번이 적혀있는 건물을 발견했다. 거대한 건물이었다. 마치 2000년대의 아파트를 연상하게 하는 그 건물은 40년 전의 세계를 보는 듯 했다.(그도 그럴 것이, 현제 세상의 건물은 소형화 기술이 발달하여 볼펜만한 공간에도 20세대 이상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주석)
그 거대한 아파트 안에 들어가자, 경비실로 추정되는 건물에서 키를 주었고. 그들은 그 키에 적힌 방으로 들어갔다.
“자네는 기억이 남아 있는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릭이 그녀에게 건넨 말이었다.
노엘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은...”
릭이 말을 이어가자. 노엘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복제인간 수용소네.”
“복제인간 수용소겠죠.”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신같이 젊은 아가씨가 수술 중 각성이라니. 이거 이야기가 빠르겠군.”
릭은 침실의 침대위에 올라앉았다.
“자네는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릭은 이상하게도 침실 옆 테이블에 올려져있는 나쵸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곳에 대해서 말이지.”


4. 릭의 이야기


내가 이곳에 들어온 건 2042년 8월 9일인 것 같다. 딸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얻어 타 돌아오는 중 잠이 들었고. 눈을 뜨자 난 생전 처음 보는 곳의 수술대 위에 누워있었다.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의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 독한 분이야. 어떻게 이런 분까지...”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눈앞이 흐리고 이상하게 머리가 쑤셔왔으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옆에서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하죠.”
익숙한 목소리였으니 떠올리기도 전에 온몸을 칼로 가르는 듯 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뒤이어 살 속을 무언가 마구 휘젓는 느낌이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난 눈을 감을 수조차 없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이 내 몸을 찌르고 갈랐다. 무언가를 꼽기도 했고. 무언가를 빨아들이기도 했는데, 그 고통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 사람이 미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정신 줄을 놓고 바보가 되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 정신은 너무나 온전히 남아있었다.
처음엔 배에서부터 팔, 목, 다리, 머리 순으로 이상한 것들이 수십 개씩 내 몸에 꽂혔고, 뭔가 빨아드리기 시작하더니, 한순간 모두 빠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내 몸을 꿰매는 듯 한 소름 돋는 느낌이 들었다.
뼈를 두드리는 듯 한 느낌을 끝으로 고통은 끝났다. 익숙한 목소리의 말 한마디를 끝으로 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끝났습니다.”


“세포단위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DNA를 재결합 시키고 원본 보존해서 따로 보관해놔.”
내가 정신을 차릴 즈음에 들려온 말이었다. 그 말이 끝나고 그들은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수술대 위에 올려져있는 그 상태 그대로 수술대 체 옮겨졌다. 긴 통로를 지나는 중엔 처참한 광경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 쪽에는 수십 명의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나란히 컴퓨터 앞에 앉아 기계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또 다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단순 노동을 하며 감독관으로 보이는 군인에게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분류해 담는 듯 한 노동이었는데, 그들의 몸에는 수많은 피멍이 나있었으며 제때 치료도 해주지 않았는지 곪아있는 상처가 대부분이었다. 나를 이끌던 의사가 왼쪽통로로 돌자, 그곳에는 더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한 쪽에서는 똑같이 생긴 알몸의 여인들을 군인들이 범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피부가 남자들의 흰 액체로 뒤덮여 있음에도 자신들의 몸을 남자의 곁에서 끊임없이 흔들어대고 있었고, 그녀들의 눈은 이미 뒤집어져있었다.
역겨움에 고개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내가 깨어나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러자 나는 충격의 절정을 맞이해야 했으니... 아, 그것은 정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경험이었다. 시험관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가 있는 내가 나를 두 눈으로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왁!”
그 소리에 놀란 의사들은 거의 자빠질 뻔 했고, 그다음 나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매가 내 몸을 때리는 아픔보다도 그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역겨운 경험에 빠져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맞은 뒤 그들은 나를 다시 끌고가기 시작했고, 어딘가 앞에 멈춰 섰다.
“복제품 1호 샘플입니다.”
나를 이동시키던 두 남자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문이 열리고 나는 수많은 복제품들이 아우성치는 수용소에 발을 딛게 되었다.
“내가 원본이야!”
  70 먹은 몸으로 나는 일주일간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줄어드는 식사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난 머리를 박고 생각했다. 다시 일주일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이곳을 나간다!’

목표가 정해지고 나니 일은 의외로 쉽게 쉽게 풀렸다. 보다 완벽하게 개조된 내 모습을 한 복제품이 내가 있는 수용소를 정찰하기 시작했고, 난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이곳 사람들의 행동 패턴 등을 알아낼 수 있었다.


5. 유다


“그렇게 3년 동안 정보를 모아왔네”
릭은 거의 숨도 안쉬어가면서 이야기를 내뱉더니 기력이 쇠한 듯 잠시 엎드려 숨을 골랐다.
“아직도 그 두 눈을 잊을 수 없어.”
그의 작은 어깨가 흔들렸다. 노엘은 머뭇거리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다독였다.
“시간이 없네, 자네는 이곳에서 나가야해.”
그는 진정한 듯 노엘을 바라보며 다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왜 굳이 저를 내보내려 하시는 거죠?”
그녀는 살짝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나가면 자네가 알아서 행동할걸세.”
“무슨 말 이시죠?”
“우리가 있던 1번 수용소는 원본과 똑같이 복제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야. 물론 뇌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현실에서 활동했던 본체의 기억은 지우네만, 세포단위의 기억까지 지우는 방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듯하네. DNA를 그대로 복제해오는 체제이 문제가 생긴 게야.”
노인은 살짝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복제품의 행동 패턴 역시 나와 유사했어. 심지어 필채까지도...!”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아나요?”
노엘은 그의 말이 끊임없는 한탄으로 이어질 것을 예상했는지 말을 가로막고 질문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을 아는 듯 말하는 이 금발의 노인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암. 알다마다. 이곳에서 나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걸세.”
“지금...”
“지금 말해줄 수는 없네. 그것은 계획에 피해가 너무 커.”
노인이 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나가는 것이 우선일세. 자, 이제부터 작전을 얘기해줌세.”
릭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방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되는 지점에 가상현실 부팅 시스템이 있다네. 이 곳 시각으로 새벽 세 시에서 네 시쯤에는 그곳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 타이밍이 중요하네. 지금이 오후 다섯 시군. 이곳에서 들키지 않고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 두시 반에 출발 하도록 하지. 네 시 이후에 이곳에 도착하면 아마 우리는 총알받이가 될 걸세.”
릭은 자신의 계획을 말하며 살짝 흥분한 듯 얼굴이 상기되었다.
“부팅 시스템을 리셋 시키면 아마 한동안 그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네. 그러면 우리는 그 바로 옆에 위치한 통로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그게 여기 어디에 넣어둔다고 했을 텐데…….”
릭은 자신이 앉아있는 침대의 뒤에 있는 벽과의 비좁은 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 여기 있군.”
그가 꺼낸 것은 놀랍게도 이곳의 설계도였다.
“그들은 복제품들이 자신의 본체에 애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모양일세.”
그는 껄껄거리며 웃더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 통로를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돌면, 바깥세상의 일반인들이 입는 옷이 있을걸세. 이 옷을 입고 다시 돌아와 맞은편 문으로 나가면 되는걸세.”
그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4시에 들어간다고 가정했을 때 20분 안에 이 모든 일들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린 숨을 곳도 없이 꼼짝 말고 잡혀있게 될 걸세.”
“하지만 잡혀도 우릴 죽이거나 하진 않을 것 같군요.”
노엘의 뒤이은 말에 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저 역시 수술 중 각성의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복제품을 본체의 건강. 즉 장기이식 등 몸에 부작용을 막기 위해 만들어내고 있다는 내용의 이야길 들었는데, 그리 쉽게 죽이고 원본을 다시 복제 하는 수고를 해줄 만큼 친절하진 않을 것 같네요.”
노엘은 확신에 차 말했다.
“하지만 잘못하면 권 그 불쌍한 젊은이나, 내가 복제 당시 본 사람들처럼 될 수도 있어.”
릭이 말했다.
“음... 뭐 일단 그럴 일이 없길 바라야죠.”
노엘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렇지.”
릭은 더 이상의 대화가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
“당신이 원본이라면 현제 세상에는 복제된 당신이 생활하고 있다는 건가요?”
“... 아마도 그럴걸세. 자 리셋 하다말고 졸고 싶지 않다면 지금 한숨 자두게나.”
그는 앉아있던 침대에 누워버렸다.
노엘도 맞은편에 있는 다른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 ... ...





“꺄악!”
노엘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에 놀란 릭이 노엘의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릭이 말했다. 노엘의 시선이 자신과 같은 이불안에 있는 어떤 소녀에게로 갔다.
“누...누구죠...?”
“내가 알 리가 있겠나. 그보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와 있는 건지...”
둘은 서로의 얼굴과 의문의 소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으음...”
소녀가 뒤척였다.
“우응...자는데 누가 시끄럽게 굴어.”
매우 앳된 목소리였다. 소녀가 일어나 앉았다. 새까만 머리칼과 약간 누런 피부는 그녀가 동양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매우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그 소녀는 키가 노엘의 가슴팍 밑이었으며 매우 마른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는 노엘이나 릭처럼 단벌로 된 죄수복이 아닌 일반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너...넌 누구니...?”
노엘은 당황하여 물었다.
“유다.”
소녀는 매우 짧게 대답했다. 릭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꼬마야. 넌 어떻게 이곳에 온 거니?”
노엘이 물었다.
“몰라, 그냥 관리인에게 내보내달라고 얘기했을 뿐이야.”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다시 드러누워버리는 유다였다.
“말도 안 돼!”
릭은 드러누운 소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는 무섭게 쏘아붙였다.
“누군가 너를 이곳에 보냈느냐? 우리를 감시하라더냐? 그곳 간수와 대화를 해서 수용소를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해!”
갑자기 유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럼 넌 내가 다른 사람에 의해 보내졌다고 생각 하는 거야? 생각을 해보자 우리.
만약 너희를 감시하러 나를 보냈다면 아무런 무장하나 없이 보냈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기에다가 감시를 하겠단 사람이 감시 대상 옆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참 바보네.”
소녀가 말하는 목소리는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게 노인을 앞에 두고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릭이 화를 냈다.
“왜, ‘아니’ 라고 했을 뿐인데...”
소녀의 눈빛은 어느새 처음 순진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노엘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의식하지 못하는군요.”
릭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화가 나서가 아니라 힘에 부쳐서 인 듯싶었다.
“꼬마야, 아니. 유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 있니?”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음.. 이곳에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되었니?”
“몰라, 두 달 조금 넘은 것 같아.”
노엘은 살짝 고민에 찬 눈빛으로 릭을 바라보았다.
“이아이도 데려가자는 말이 하고싶은겐가 !? 안되네. 움직이는 인원이 많아질수록 더욱 위험해져 !”
릭이 방금보다도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치자 유다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소리 지르지 마.”
“난 아무것도 잘못한거 없어... 소리 지르지 마...”
그렇게 한동안 중얼거리던 소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잠시 당황한 노엘은 달려가 그 작은 소녀를 끌어안고 릭을 매섭게 바라봤다.
“이 어린 애를 이런 곳에 두고 어떻게 가라는 거죠? 이것보세요. 기껏 해야 열 살을 조금 넘긴 순진하고 불쌍한 애일뿐이라구요.”
릭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젠장! 좋을 대로 하게.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저 아이를 도와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네.”
노엘은 릭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는지 계속 릭을 바라보다 다시 유다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너에게 소리치지 않을 거야.”
소녀는 노엘을 잠시 바라보다 노엘의 품에 안겼다.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 몇 시죠?”
노엘은 릭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한시일세. 이 꼬마가 붙었으니 조금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일찍 출발하도록 하지.”
릭은 한마디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유다는 여전히 겁먹고 울고 있었다.
노엘은 말없이 소녀를 안아주었다. 잠시 뒤 유다는 울음을 멈추었다.
“언니는 누구야?”
유다가 붉은 눈으로 훌쩍이며 말했다.
“... 노엘이라고 부르렴.
노엘이 일어나며 말했다. 유다도 따라 일어났다. 그런 유다를 잠시 바라보다가 노엘은 부엌으로 갔다. 비상시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만한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봤자 챙긴 것은 부엌칼 따위였지만) 그녀는 부엌에 마련된 두 자루의 칼을 칼집에 넣어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유다가 자신의 옷 안에 몰래 무언가를 더 집어넣는 것을 느꼈지만, 별 것 아니려니 하고 가만 놔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옷은 그녀에게는 너무 커서 무언가 들어있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분 뒤에 출발할걸세.”
릭이 그녀의 뒤에서 소리쳤다.





6. 탈출


생각보다 부팅 시스템으로 가는 길은 쉽게 뚫렸다. 가는 길에도 이상할 만큼 아무것도 없었고, 또한 새벽이라 다른 이들이 그들을 볼 만한 빛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도착했군.”
릭이 매우 거대한 기계 앞에서 말했다. 릭의 앞에는 그 거대한 기계를 제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화면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용법은 아세요?”
노엘이 물었다. 릭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음... 아무래도 내가 들은 기계와는 좀 다른 것 같군. 나에게 정보를 준 이가 이 기계를 본지 3개월이 지났다고 했으니 그 사이 교체된 것 같네만...”
릭은 말을 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노엘은 침착하게 물었다.
“글쎄...”
그 때 유다가 노엘의 옷을 잡아당겼다.
“왜 그러니 유다?”
“내가 해볼래. 잠깐만 나 봐봐.”
노엘이 유다를 향해 돌아섰다. 유다는 노엘의 품에서 부엌칼 하나, 전선과 다 망가진 휴대용 라디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계들을 꺼내었다.
“그런 건 언제 집어넣어 논거니?”
노엘은 어이없다는 듯 자신의 허리춤에서 나온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그냥 방금 전에."
유다는 짧게 말하고는 화면 뒷부분을 칼로 찔렀다. 화면을 지탱하던 겉껍데기를 전부 다 떼어내어 버리고는 어디서 나온 건지도 모르겠는 기계들을 마구 붙였다가 떼었다가를 반복하더니 그 것들을 고정시키고 그곳에 전선과 휴대용 라디오를 연결시켰다. 그러자 라디오에서는 매우 거친 쇳소리 같은 게 났다. 노엘은 그 소리가 매우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다는 그곳에 귀를 한참을 기울이더니 이내 기계에 손을 가져갔다.
“도대체 뭘 하려는 게냐!”
릭은 짜증스럽게 얘기했지만, 유다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화면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 때의 유다의 눈빛은 조금 전, 릭에게 대들던 때의 날카로운 눈빛과 매우 비슷해보였다. 화면을 바라보자 무언가 빠르게 지나가더니, 점점 어떠한 것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상태 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이 얼마 전까지 대화하고 앉고 먹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건물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존재하던 가상현실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지고 온통 새카만 밀실이 보였다.
“어떻게 한거니?”
노엘이 물었다.
“그냥... 기계들이 말해줬어.”
유다는 해맑게 웃었다. 매우 뿌듯해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릭이 기계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 문과 이어진 복도의 끝에는 시계가 하나 달려있었다. 정확히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흠... 20분은 벌었군.”
릭은 늙은 몸을 이끌며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외쳤다.
“어서들 오게나. 시간이 없네.”
노엘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유다는 싱글벙글인 체로 노엘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릭의 설명대로 기나긴 복도가 이어졌다. 그들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인지 그들은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옷이 있는 곳으로 왔다.
“휴... 이거 두 번은 못해먹겠구먼.”
릭이 투덜거렸다.
만날 때부터 평상복을 입고 있던 유다를 제외한 둘은 그곳에서 옷을 찾아 입었다.
정장이었다.
“아무리 유행이 변한다지만, 이 녀석을 안 입는 곳은 없지.”
릭이 자신의 갈색 슈트의 매무새를 정돈하면서 말했다.
“언니 이쁘다!”
유다는 릭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노엘을 보며 말했다.
“이 느낌... 분명 불편하지만 익숙한데요.”
노엘이 말했다.
“아마 그럴 테지... 자 나가세.”
그들은 도면에서 본대로 맞은편 문으로 갔다. 문 옆에는 작은 버튼에 'open'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아저씨 그거 누르지 마!”
유다가 말했다.
“아니 이 녀석아, 이곳에서 나가려면 당연히 문을 열어야 할 것 아니냐.”
릭이 유다의 말을 무시하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등이 붉은 빛으로 변했다.
“아니...이게 무슨...”
릭이 당황하며 주변을 살필 때 문이 매우 느린 속도로 열리기 시작했다.
“도망자가 있다!”
어디선가 무수히 많은 경비병들이 들이닥쳤다.
“사격!”
그들은 손에 들린 총을 쏘기 시작했다. 노엘의 예상대로 살상용은 아닌 것 같았다.
“꺅!”
유다의 몸에 주삿바늘이 박혔다. 유다는 휘청 하더니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
노엘이 유다를 데리러 간 사이 또 하나의 주삿바늘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윽!”
릭이었다.
“어서 그 아이를 대려나가!”
그는 노엘과 유다를 보호하며 외쳤다.
“하지만...!”
“난 나이가 있다네. 같이 나간다면 좋겠네만, 일단은 아이가 먼저야!”
“하지만......!”
릭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의 등에는 이미 열 개가 넘는 주삿바늘이 박혀있었다.
-쿵
문이 전부 열렸다. 노엘은 유다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면 우선 신문부터 보게나.”
릭은 그들의 뒤에서 살며시 웃으며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노엘은 유다를 안고 온힘을 다해 달렸다. 릭을 잃은 상실감 같은걸 느끼기 전에 어떻게든 이 소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노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문을 나서고 나서부터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달리고 달려서 어떠한 문에 다다랐다. 노엘은 그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나 이제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뒤에서 유다가 말을 걸었다. 노엘은 살며시 유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문고리에 손을 가져갔고, 눈을 감은 채 서서히 잡아당겼다.
“어, 화장실이다.”
유다가 말했다. 노엘은 그제야 눈을 떴다. 그들은 냄새나는 화장실의 한쪽 벽을 통해서 나오고 있었다. 노엘이 한숨을 쉬었다. 유다는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노엘은 발을 떼어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매우 어두운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골목길을 빠져나가자, 매우 혼잡한 도시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축소기술이 사용되지 않은, 하늘을 뚫을 듯 한 고층건물들과 골목골목 자리 잡은 노점상. 손목에 달린 화상기계로 대화하는 비즈니스맨에서부터 옷을 사러 나왔는지 자식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가족들까지. 그들이 있던 조용한 가상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혼잡한 도시풍경이 그들 눈에 들어왔다. 노엘은 유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꼭 붙잡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누군가 무엇을 아무것도 없이 해내야 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했다.
“왜 나를 밖으로 내보내려 하셨던 걸까.”
노엘은 중얼거리다 문득 릭이 했던 두 가지 말을 생각했다.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기에 세포단위의 기억이 남아있다.’
‘신문을 보아라.’
노엘은 한 쪽 구석에 보이는 노점상으로 달려갔다.
“오늘자 신문 한 부 주세요.”
노엘이 상인에게 말했다.
“아이고, 수상님. 어찌 이리 누추한 도시까지 몸소 오셨습니까?”
상인이 신문 한 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노엘은 자신이 복제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후, 잘은 모르지만 수상이란 직위대로 행동하려 노력했다.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시민들과 대화해야 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노엘은 생각하기도 전에 나오는 말에 놀랐다. 그리고 뒤이은 상인의 반응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선거 공약대로이시군요. 자, 서비스로 음료수 하나 더 가져가시죠.”
상인이 내어놓은 신문 1면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밑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보다 많은 곳을 다니고,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서
    국민과 가까운 정치를 할 것입니다. - 캐드만.E 현 수상 』
노엘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유다가 노엘의 옷을 잡아당겼다.
노엘은 정신을 차리고 상인에게 미안한 기색과 함께 말했다.
“죄송한데 제가 오면서 가방을 도둑맞은 것 같습니다. 경호원 한 명 없이 돌아다니려다보니까요.”
“괜찮습니다. 부디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시길 바라며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노엘이 듣기에 그 말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의사표시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내 반드시 이곳을 발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안낸 돈, 나중에 내러 다시 오지요.”
노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곳으로나 걸어가기 시작했다. 10분을 걸어 앉을만한 곳을 찾아낸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아 신문을 펼쳤다.
“아직도 신문을 파는 곳이 있다니... 아니면 이 지역뿐인 걸까.”
노엘은 혼자 중얼거렸다. 신문에는 대부분 캐드만 수상에 대한 글들이었다.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느니, 캐드만 내각의 조직체계가 여태까지 중 가장 완벽한 인물로 구성되었다느니 등등의 말이었다.
묵묵히 신문을 읽다가 노엘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는지 하나의 기사를 읽기 시작한다.

“마츠이시 유다 작가. 의문의 실종 후 집 근처 숲에서 발견.
얼마 전 자신의 친 딸과 함께 산책을 하던 도중 실종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었던 마츠이시 유다 작가는 지난 2일, 새벽 네 시경에 인근의 산책로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최소한의 수사를 받은 후 자신의 집에서 나오질 않고 있으며, 마츠이시를 담당했던 경찰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수사 내내‘은밀하고 힘 있는 세력이 인간을 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자신이 그 피해자들 중 한명이란 얘기를 했다고 하며, 경찰은 그에 관한 수사를 하고 있으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수사의 필요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마츠이시는 ‘별’, ‘잔혹동화’, ‘천년을 거스른 이야기’ 등의 소설을 집필하여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작가였으나, 최근 발간되는 신간들의 내용이 비교육적이란 이유로 여러 번 발간중지를 받고, 얼마 전 천제 기계개발자였던 남편까지 여읜 비운의 작가이다. 그녀의 딸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재능을 전부 이어받았는지, 기계와 언어에 매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말이 짧고, 남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한번 주목이 된 적이 있다.”

노엘이 글을 큰소리로 읽자 유다가 흥미가 생긴 듯 옆에서 슬쩍 신문을 보았다.
“어, 나하고... 엄마?”
유다는 매우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쳐다보았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니?”
노엘이 물었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건 두 달 전 그 이상한 건물에 있었던 때부터야.”
유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이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걸 왠지 알 것 같아.” 
노엘은 릭의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하기에 세포단위의 기억이 남아있다.”
“응?”
“아냐. 아! 유다. 너 저기 사진에 있는 집이 어딘지 알 수 있겠니?”
노엘이 마츠이시 유다와 관련된 기사 밑에 있는 그녀의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크로스 벨리 23번지 13호.”
노엘이 이상한 듯 자신이 앉은 곳의 맞은편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크로스 벨리』

“... 이 동내야!”
노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유다가 먼저 말했다.
“나 잘하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날 따라와.” 
유다는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엘은 릭을 생각하며 중얼거리다 소녀를 따라갔다.
“릭은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었던 걸까?”


7. 가족


한참을 걸어서 나온 곳은 분명 사진과 같은 건물이었지만 사진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의 허름한 개인주택이었다. 노엘이 그 집에 들어가려 발을 때자, 갑자기 유다가 노엘의 팔을 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얘기했다.
“난 복제인간이니까... 들어가면 안 되겠지?”
유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
“알고 있었어. 안 그랬으면 기억 못했을 리가 없을 거야.”
“... ... 내가 먼저 들어가서 양해를 구할게.”
노엘은 마츠이시의 집 벨을 눌렀다. 잠시 후 한 노파가 문을 열고 나왔다.
“기자라면 썩 꺼져!”
“안녕하세요. 복제인간 피해자입니다.”
노엘은 노파의 욕지거리를 가로막고 말했다. 노파는 놀란 표정으로 노엘을 바라보았다.
“자네, 지금 복제인간의 피해자라고 했나?”
“예. 저와 실례일 수 있지만, 마츠이시씨의 딸의 복제인간이 함께 있습니다.”
“오, 세상에!”
노파는 예상외로 화를 내지 않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어서 들어오게나. 유다, 들어오렴.”
노파는 마치 자신의 가족인 양 유다를 대했다. 유다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마츠이시의 집으로 들어가자, 마츠이시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성이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 옆에 진짜 유다가 있었다.
“얘, 마츠이시. 손님이 오셨단다. 얘기할 거리가 많을 게야.”
마츠이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고, 유다는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유다는 서로를 바라보며 멈춰 섰다.
“... 당신들 누구야.”
진짜 유다는 노엘에게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보이는 대로. 복제 피해자란다.”
노엘은 차분하게 말했다. 진짜 유다에게는 이곳저곳에 꿰맨 자국이 남아있었다.
노엘의 옆에 있는 유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진짜 유다는 한숨을 푸욱 쉬더니 그들을 안내했다.
“... 이쪽으로 와.”
유다를 따라 마츠이시의 앞에 선 노엘과 유다는 그녀의 수척한 얼굴과 대조되는 맑은 눈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그녀의 정신은 또렷했고, 비운의 작가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어서 와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이렇게 인사 할 수밖에 없음을 먼저 사과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명랑했다.
“불쑥 얘기도 드리지 못한 채 찾아온 것을 용서해주세요.”
노엘의 옆에 있는 유다가 말했다. 노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존댓말을 하는 유다라니.
“오 얘야, 네가 또 다른 유다구나.”
마츠이시는 어딘가 슬픈 눈으로 유다를 바라보며 웃었다.
“... 죄송해요, 힘드실 텐데... 전 나가있을까요?”
“오,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단다.”
그러고는 마츠이시는 노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건을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당신과 이 아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제가 이 아이를 대리고 있어도 될까요?”
두 유다는 의외의 말에 놀랐다.
“뭐, 두 유다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습니다.”
노엘은 덤덤하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제가 언제든지 보러 올 수만 있다면.”
진짜 유다보다도 오히려 노엘과 함께 온 유다가 거부의 말을 먼저 꺼냈다.
“아녜요, 제가 어떻게...”
그러자, 마츠이시는 유다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난 괜찮단다.”
“그럼...”
“하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새 이름이 필요하겠지?”
유다는 품에서 울음에 목이 잠겼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의 표시를 했다.
“음... 유다, 네 생각은 어떠냐?”
진짜 유다는 진심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오하나.”
유다가 한참을 고민하다 말한 이름이었다.
“오하나...?”
마츠이시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응. 작은 꽃「小(お)花(はな)」이란 의미에서 오하나.”
하고는 오하나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 이름은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때, ‘만약 동생이 생긴다면...’ 하고 생각하다가 나온 이름이야. 확실히 내가 먼저 있었으니 네가 복제되어 나타났을 거니까. 네가 동생해.”
하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 막 열 살이 넘은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른스러운 웃음이었다.
오하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유다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하나...는 그냥 부르기 좀 그런가? 그냥 하나라고 부르지 뭐.”
이제 하나는 웃고 있었다. 그 어린나이에 눈을 뜨면 항상 혼자였을 것이 분명 가슴 아팠을 것이다.
“축하해! 유다, 아니 하나.”
마츠이시가 한마디 거들었다.
“오하나 유다. 쇼우도리「小(しょ)鳥(とり)」유다. 하나(花)와 도리(鳥)라고 부를까?”
유다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로서 그들은 하나와 도리가 되었다.
노엘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고는 마츠이시에게 고개를 돌렸다.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노엘과 마츠이시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노엘이 하나와 도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잠시만 자리를 비켜줄래?”
도리는 자신의 방으로 하나를 데려갔다.
“저와 하나는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복제인간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매우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노엘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저는 이 일들을 멈추고 싶습니다. 부디 배후 세력에 관해 아시는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마츠이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제 정부에서는 왜인지 몰라도 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복제인간과 관련된 내용 때문인 것 같은데요. 당신이 캐드만 수상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거죠?”
매우 싸늘한 말투였다.
“전... ... ...”
노엘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 그 반응을 보니 캐드만은 아닌 것 같군요.”
노엘은 당황하여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와 현제 수상인 캐드만은 친구였어요.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걸 정말 잘하는 친구였죠. 아마도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이 캐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백개라도 지어낼 친구입니다.”
마츠이시는 경계를 풀고 얘기했다.
“제 이름은 노엘이라고 합니다.”
노엘이 말했다. 그러자 마츠이시는 살짝 말을 받았다.
“아마도, 엘론이었겠죠? ELON.”
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했다.
“복제인간 프로젝트의 배후에 관해 아시는 것이 있나요?”
마츠이시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배후라면...”
“캐드만 현 수상입니다.”
“현 수상이 인간복제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노엘은 의아해 물었다.
“캐드만은 언제나 항상 소외된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구한다는 말을 해오던 친구였어요. 정치에 발을 처음 들여놓았을 때, 그녀는 한낱 국회의원이었고, 중대사에 관해서 신임을 받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죠.”
마츠이시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려 했어요. 당시 저는 베스트셀러의 책들을 판 돈을 꽤나 많이 빌려줬었죠. 그녀는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주어서라도 자신이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 했어요. 그러고는 6년 전, 드디어 수상이 되었죠.”
“하지만 역시나 복제의 이유를...”
“캐드만은 자신의 부모를 암으로 여의었어요. 지금도 그 수술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죠. 그녀는 암 치료법 개발에 많은 지원을 하고 싶어 했지만, 역시나 지지를 받지 못했어요. 정치인들이란,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그런 악랄한 사람들이니까요.”
마츠이시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럼, 의료의 목적으로 인간을 복제하기 시작했다는 건가요?”
노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츠이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처음에는 그랬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복제인간을 상품취급 하기 시작했어요. 어떠한 심경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복제된 여성들을 군인에게 팔고, 복제된 기술자들에게 기계제품을 만들어 팔게 하기 시작했죠. 처음엔 돈이 모자란 것처럼 행동했지만, 많은 부가 쌓인 지금에도 그 일을 멈추고 있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복제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아뇨. 제가 그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전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그녀의 책상에 놓여진 복제인간 프로젝트 파일을 보고나서였어요. 그것을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한 뒤 저와 제 딸을 대려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죠.”
마츠이시는 치를 떨며 얘기했다.
“그 어린것에게...”
노엘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하나와 도리가 노엘이 가져 온 신문을 들고 그들에게 왔다. 아마도 옅듣고 있었나보다.
“엄마, 이 글. 거짓말인 것 같아.”
도리가 먼저 말했다. 하나는 아직 엄마 소리를 하기 민망한 것처럼 보였다.
“저기... 그러니까, 이 기사는 어...엄마가 했던 말에 대해 입장을 표연한 말인데, 그녀의 말을 그대로 적어놨거든? 근데, 말투에서부터 뭔가 가리려는 다급한 투가 보이고, 또 그녀가 현제 이사해서 다른 거주지에 살고 있다는 마지막 말도, 지어낸 듯 한 느낌이 들어.”
하나가 말했다. 노엘이 황당한 듯 말했다.
“이 아이들, 전부터 느꼈지만, 글이나 기계에 관해서는 둘째라면 서럽겠군요.”
그러자 하나가 씨익 웃었다.
“나는 글에서 글쓴이의 당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마츠이시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어쩌면 너희는 이 엄마, 아빠를 쏙 빼닮았니.”
노엘이 마츠이시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마츠이시씨도...?”
마츠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가 요즘 언론에 비춰지며 직접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열에 여덟은 거짓임을 알 수 있어요. 그녀는 지금 집에서 외출을 삼가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는 국회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츠이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이 그곳에 들어간다고 쳐도,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노엘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희생이란 필요한거니까요.”
마츠이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엘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그저 유다...아니 하나에게 자신의 생모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느꼈습니다. 복제된 모든 이들에게도 자유를 주고 싶다고... 그래서 배후에 관하여 묻게 되었습니다.”
마츠이시는 웃으며 말했다.
“참... 어렸을 적 캐드만과 닮았네요. 잘되길 빌어드릴게요. 그녀는 국회에 있습니다만, 현제 경비원조차도 그 사실을 모르니... 아! 제 옷 중 그녀와 함께 산 옷이 있는데, 그것을 입고 국회로 가시면 아마 그냥 들여보내줄겁니다.”
마츠이시는 자신의 붉은 빛이 감도는 정장세트와 약간의 돈을 빌려주었다.
“... 그 아이도 처음부터 나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은 노엘을 보며 마츠이시가 말했다.
“... 그 옷을 입은 당신을 보니까, 옛 친구가 절 보러온 것 같군요.”
노엘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당신은 한 친구를 더 둔 것입니다.”
노엘이 말을 한 뒤 뒤를 돌아 길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하나가 노엘을 따라 갈 준비를 하며 마츠이시에게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마츠이시는 놀라서 붙잡았다.
“안 돼! 위험하단다.”
노엘도 한마디 거들었다.
“넌 이곳에서 네 행복을 찾으렴.”
하나는 뭔가 더 따지려 들었지만 도리가 하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냥 여기 있어 바보야.”
노엘은 두 소녀를 보며 살짝 웃어보였다.
“난 괜찮을 거야. 마츠이시씨, 두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마츠이시는 가벼운 목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노엘은 그렇게 마츠이시의 집을 나섰다.


8. 하나와 도리 이야기.


도리가 자신의 방으로 하나를 데려왔다. 하나는 신기한 듯 그 방을 둘러보았다. 옅은 핑크빛의 벽지가 눈에 띄는  방에는, 많은 책들과 기계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낯설지 않아...”
하나가 말했다.
“너의 방일 테니까.”
도리가 말했다.
하나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고, 책을 펴 훑어보기도 했다.
“... 너는 어떻게 살아왔니?”
하나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도리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유독 몸이 작았대.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나면서 누구나 다 얼마 못살 거라고 말했을 정도로 건강하지 않았고. 하지만, 기적인지 뭔지 아무튼, 건강을 되찾았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지. 사람들이 우리를 천재라고 부르는 것에 비해 참 의외지? 아무튼, 그렇게 남들보다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갔지만, 남들보다 빨라지는 두뇌 발달을 보고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불렀대. 그리곤 나를 우수한 학생들만 모이는 특수한 학교로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대. 하지만, 엄마는 거절했어. 우리를 남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키워서, 남들과 똑같이 자라나게 하고 싶으셨다는 거야. 그리고 사실 나의 학교생활은 매우 순탄했어. 기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따돌림을 당한 적도 없었고, 나도 적당히 수준을 맞춰가며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지.”
하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어디를 놀러가거나 했던 기억은 없어. 하지만, 매일매일이 행복했다는 건 당당히 말 할 수 있어.”
하나는 아무 말도 없었다.
“너는 어떤 기억이 있니...?”
도리가 하나에게 물었다.
“나는... 나는...”
하나는 울음이 터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주변엔 아무 빛도 없었고, 주위엔 아무 물건도 없었지. 난 겁이 났어. 내가 무서울 때 나를 안아줄 가족들도, 아니 하다못해 한마디 섞을 사람들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어. 그들은 나를 그런 어둠속에서 한 일주일은 가둬놓았던 것 같아. 내가 일곱 번 자고 일어났으니까... 내가 일곱 번째 깨어나는 날에 이상한 남자 둘이 나를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갔어. 그리고는... 나에게 기계를 조립하라고 시켰지. 안하겠다 그러니까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어... 그리고는 이상한 철창이 쳐져있는 곳에 나를 가뒀지. 난 무서웠어. 그 때 나에게 밥을 주러 온 사람에게 나를 내보내 달라고 절실히 얘기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무어라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 그 사람은 나를 밖으로 몰래 빼주었고, 나는 아무대로나 달려갔다가 너무 피곤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잤는데, 그 날 본 것이 바로 노엘이야.”
하나가 말했다.
“... 우리에게는 어떠한 정신적 질환이 있는 모양이야. 가끔 무언가를 말하고 기억을 못하는데, 그 때에는 잠재 능력인가 뭔가가 깨어나서래.”
도리가 억지로 화제를 전환했다.
하나가 도리의 뜻을 알았는지, 눈물을 닦았다.
“이제 누가 뭐래도 넌 내 동생이야. 앞으로 그런 기억들 싹 잊게 해줄게.”
도리가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9. 대면


노엘은 당장 이동센터 (각 지역마다 배치되어있는 가장 빠른 이동수단을 제공해주는 기관 : 주석) 로 가서 국회가 있는 센트럴 파크로 이동했다. 과연, 노엘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음... 과연 릭의 말대로인가.”
노엘은 처음 보는 커피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매해 마시고 있었다.
모두들 그녀를 보고 술렁이고 있었다.
“아, 난 현제 수상과 매우 닮은 모습이겠군.”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국회를 향해갔다. 가는 동안에도 수차례 기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노엘에게 말을 걸었지만, 간단히 무시하고 지나쳐버렸다. 국회에 도착하자 마츠이시의 말대로 늙은 경비원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녀를 들여보내주었다.
“흠, 과연 이 일의 진상은...”
노엘이 혼자 중얼거릴 때였다.
“캐드만!”
어떠한 중년의 남성이 국회 안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녀를 불렀다. 물론 노엘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캐드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 복제인간 프로젝트를 당장 관둬요. 그건 비인간적인 일이에요!”
그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엘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귀를 달라는 제스처를 하자, 그는 귓속말을 허락했다.
“전...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복제인간입니다.”
그 남자는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아니... 그럼 얼마 전 탈출했다고 보고들어온 사람이...”
“예, 증거로 저의 몸엔 수술의 흔적이 없습니다.”
남자는 그녀의 팔과 목을 확인하더니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여길 오셨습니까.”
“전 이 복제인간 프로젝트라는 것에 대해 말하러 왔습니다.”
남자는 이제 조금 진정을 한 듯 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 레온이라고 합니다. 엘론의 남편입니다.”
노엘은 간단한 목례와 함께 답했다.
“노엘이라고 부르세요.”
레온은 불안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캐드만이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뭘 어쩌려고...”
노엘은 그의 동선을 눈으로 쫓으며 말했다.
“잘못된 일임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 단지 대화를 원합니다.”
“그녀는 변했습니다!”
레온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캐드만 수상님!”
그중 어떤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노엘은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부부간의 대화입니다. 자리를 피하세요!”
몰려온 사람들은 전부 당황하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디가 변했다는 겁니까.”
노엘이 물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로서는 설득시킬 수 없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조차 잊어버렸어요. 가뜩이나 입막음용 돈이 점점 불어나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병이 들었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복제품마저 없어지자 완전히 미쳐있습니다. 잘못되고 있어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단 말입니다! 제발 돌아가세요. 당신이나 엘론, 두 사람이 전부다 무사할 수 없을게 뻔해요.”
레온은 매우 빠르게 말했다. 거기에 감정마저 격해졌는지 얼굴이 빨개져있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노엘이 차갑게 말했다.
“희생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가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을 테니 경찰을 부르세요. 되도록이면 마츠이시씨와 그 아이들까지 불러오라고 하시구요. 복제인간 프로젝트에  관한 산 증인들이며, 그녀의 아이들 중에서 한명은 저와 함께 온 복제인간입니다.”
레온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권총을 꺼내 쥐어주었다.
“... 만약에 말입니다. 엘론이 당신을 죽이려 든다면... 이 총을 쏴주십시오. 살상력은 없는 총입니다.”
노엘은 살상력이 없다는 말에 그 총을 받아 쥐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 위층 집무실에 있습니다.”
레온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 분명 그녀가 잘못하고 있지만... 그녀도 원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엘은 그를 지나쳐 걸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이일은 분명 잘못입니다.”
노엘은 바로 캐드만 엘론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 ... ...

“들어와요.”

... ... ...

“아...아니... 당신은...?”

... ... ...

... ... ...

“전 당신의 복제품입니다.”



























10. 대화


“오호라, 뭐라도 해보시겠다 이건가요? 무슨 배짱으로 도망쳐 이곳으로 오셨는지?”
캐드만이 노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 당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러 왔습니다.”
노엘이 캐드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잘못? 누가 잘못을 해!”
캐드만이 노엘을 향해 소리쳤다.
“그럼 당신이 저지른 일은 합리적이라고 보는 건가요?”
노엘이 캐드만을 향해 소리쳤다.
“난 모든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있을 뿐이야!”
캐드만이 노엘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외쳤다.
“모든 인류를 위해서는 수천의 사람들이 희생되어도 되는 건가요!”
노엘이 캐드만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외쳤다.
“수천의 사람들? 그들을 누가 살아가게 해줬는데!”
캐드만이 언성을 높였다.
“당신이 살아가게 해줬어? 당신은 필요 없는 고통만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만들어냈어!”
노엘이 언성을 높였다.
“하! 내가 없었다면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야.”
캐드만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을 존재하게 한 것부터 문제인거죠.”
노엘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캐드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적어도 이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아요!”
노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철컥

누군가 들어왔다.
“그만들 하게나!”
진짜 릭이었다.
“릭!”
“아...아버지!”
캐드만과 노엘은 동시에 놀랐다. 캐드만은 자신의 아버지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노엘은 릭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아버지...?”
노엘은 충격에 빠져 물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못했네.”
릭은 노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족...”
노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미 늦었어요.”
캐드만이 말했다.
“난 잘못하고 있지 않아. 인류를 위해 한 일이야. 더 이상 암으로, 질병으로 죽을 필요가 없기를 바랄뿐이야...!”
“당신은 틀렸어.”
“난 틀리지 않았어!”
노엘과 캐드만은 다시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뭐라서 날 막아. 네가 얼마나 잘나서 나를 막아. 넌 그래봤자 나와 같거나 내 이하일 뿐이야. 넌 나보다 뛰어날 수 없어. 그런 네가 뭘 막으려는 거야?”
캐드만이 흥분해서 말했다.
“이것이 정말로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노엘이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인류를 위한 일. 그 일을 위해 수천의 사람들이 동물원 동물들 마냥 한곳에 갇혀서 자기한테 가족이 있는지,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늙어가는 몸으로 자기 주인을 위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캐드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나요? 한사람을 위해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바보 하나 더 만들어내는 것? 그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갇혀있는 모든 이들은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현실 적응훈련이라며 꾸며진 가상현실에 가둬놓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인간답게 살게 해준답니까?”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았어!”
캐드만이 소리쳤다.
“나도... 뭐가 잘못 된지 알고 있어... 나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
캐드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내 어머니를 원했어.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살려내고 싶었어! 다시는 암으로 죽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강압적인 아버지가 아닌, 따뜻한 아버지가 있기를 바랐고... 만약 내가 잘못된다면... 나를 대신해줄 사람이 있기를 바랐어.”
“... ...”
노엘의 존재 이유를 말하는 캐드만 앞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캐드만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처음엔 나도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었고, 처음엔 인간을 복제할 생각도 없었어... 그저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던 것뿐이야.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어. 돈도 모자랐고, 나를 도와줄 사람들도 모자랐지. 그래서 뛰어든 게 정치판이었어. 하나뿐인 친구 마츠이시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내가 우두머리가 돼서 어머니를 다시 살리는 기술을 만들고 싶었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는 실질적으로 최소한의 유전자로 인간을 복제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그래서 더욱 정교한 방법을 연구하기위해 내 자신을, 내 가족을, 내 친구의 가족들을 복제해야만 했어! 하지만 한계가 있었어. 그래서 연구원들의 가족들, 길에서 돈이 필요해 자기 장기라도 파려는 사람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댈 수밖에 없었어...”
“그만하렴.”
릭이 그들의 말을 막았다.
“그만하면 됐다. 아가야... 내 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구나.”
릭은 캐드만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고는 노엘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이곳도 가상현실일세.”
“!”
노엘과 캐드만은 동시에 릭을 바라보았다.
“이곳도 가상현실일세. 이제 이 세상에 현실이란 것은 없어. 이미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자연을 망쳐버렸고. ‘그것’만이 이곳을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고 있네.”
“그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엘이 릭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릭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것’을 제어하는 법을 알고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그것을 종료시켜놓으면 한동안 아무것도 없는 현제 썩어버린 행성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걸세. 그동안은 벽도 없고, 나무도 없고, 오직 사람만 존재할게야. 그러면 복제된 인간들은, 자연히 그 수용소를 빠져나올 수 있겠지.”
노엘은 잠시 릭을 쳐다보았다.

“그러지 마세요! 당신들은 그럴 권리 없어!”
캐드만이 릭을 뿌리치고 자신의 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어 노엘을 겨누며 말했다. 노엘은 그녀를 말리려 입을 열었지만, 캐드만의 다음 말에 의해 무시당했다.
“난 내 어머니를 원해!”
릭이 일어나자 캐드만은 잠시 자신의 아버지를 겨누었다. 그사이 노엘이 캐드만을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요.”
노엘이 말했다. 캐드만과 노엘이 대치중인 상태에서 갑자기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꼼짝 마라!”
그들에게 총을 겨눈 경찰들과 마츠이시의 가족들이 들어왔다.
“노엘...”
하나가 노엘을 불렀다.
“캐드만, 저 아이는 당신이 복제한 당신 친구의 딸입니다.”
캐드만이 하나와 도리를 쳐다보았다.
마츠이시가 캐드만을 불렀다.
“가엾은 친구... 이제 그만 정신 차려야지.”
노엘이 캐드만에게 다가가려 했다.
“가까이 오지마!”
캐드만이 소리 질렀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에다가 매우 겁에 질려있었다.
“가까이 오면 쏠 거야...”
“... ... ...”
노엘은 그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노엘이 한 발짝 앞으로 갔다.
캐드만이 한 발짝 물러났다.
노엘이 다시 한 발짝 다가갔다.
캐드만이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노엘이 총을 든 손에 힘을 풀었다.
캐드만도 총을 든 손에 힘을 풀었다.
노엘이 캐드만을 바라보았다.
캐드만이 노엘을 바라보았다.
“... ... ... 안녕.”










-탕





























11. 엘론 이야기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라왔다. 초등학교 때에는 집에서 내로라하는 교수들에게 과외를 받았고, 명문 중학교,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누구나 나를 부러워했고...

누구나 나를 미워했다.


아이들의 따돌림이 점점 심해졌고, 나날이 내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하지만, 집에 왔을 때 어머니의 그 환한 미소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좋았다. 나에게 마음의 상처란 없었다.
그 때는... 아버지도 나에게 사랑만을 베푸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명문 대학교에 들어간 지 1년째 되는 날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혼자서 지켜보셨다. 결국, 난 어머니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인지 나에게 모질게 굴기 시작하셨고, 엘리트이지만 사교성이 좋지 않았던 나는 어디를 가도 따돌림을 당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었다.

우연히 대학교에서 생물학에 관한 내용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머니를 되살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최고의 연구진들이 내 생각대로 실험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확신했었다. 내가 어머니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할 수 있는 말이 줄어들었다.
내가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믿어왔던 나의 자존심은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만들었다.


늦은 밤. 나 혼자 중얼거렸다.


“... 안 돼...”








12. 붕괴

캐드만은 경찰들에게 연행되었다. 마츠이시의 가족들은 모두 그녀를 따라갔다. 릭은 복제인간 수용소와 연결된 화장실이 있는 어두운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는 벽에 튀어나와있는 벽돌을 하나 잡아당겼다. 그러자, 벽은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릭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 곳엔 매우 커다란 기계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 자네를 이렇게 만든 것이 나인데, 다시 자네에게 해코지를 하러 왔구먼.”
릭은 기계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러자 기계에서는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매우 급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분이면 되네. 잠시만 눈을 감아주게나.”
릭이 기계에게 말했다. 기계의 원형 중심부가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하나의 ‘뇌’가 밖으로 나왔다.
“내 사랑...”
그 뇌가 밖으로 나오고 나서 가상현실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흐릿흐릿 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내게 해서 미안허이.”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사라졌다.

아무런 빛도 없는 광활한 대지.
그 뿐이었다.



13. 릭의 이야기 2

내 아내. 그녀는 매우 독특한 사람이었다. 꽤나 심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었고, 종말론이나 외계인의 존재 같은 허무맹랑한 것들을 좋아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상현실’이었다. 우리가 태어날 무렵 파괴되어가는 자연을 막기 위해 한 과학자가 만들었다는 ‘가상현실’ 시스템은 그것을 실제 인간의 뇌를 원동력으로 사용한다고 하며, 과학자는 이 가상현실을 위해 자신의 뇌를 바쳤다고 한다. 뇌에서 나오는 뉴런을 어쩐다나 뭐라나... 아무튼, 나는 내 아내를 말렸다. 너무 위험하다고, 또한 내가 그녀 없이 어떻게 사냐고... 아내도 처음엔 수긍하는 듯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뒤 그녀에게 대장암과 간암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어차피 곧 죽을 거라면서 자신을 반드시 그 과학자의 뇌 대신에 그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나를 졸랐다. 마지막 소원이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었지만, 어린 딸 캐드만이 어떻게 받아드릴지가 문제였다. 결국 나는 그 과학자의 조수였던 사람에게 연락하여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녀의 뇌를 그 기계에다가 옮겨 넣는 수술을 감행하였다. 물론 캐드만에게는 비밀로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학생이고 이제 머리가 좀 트였다지만, 이해해 줄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캐드만에게 말하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혼자서 그녀를 다시 만나러 갔을 때. 가상현실을 잠시 멈췄을 때. 더 이상 주변에 아무것도 없을 때. 내 안에서 끝없는 후회가 나를 죄어왔다. 그리고 또 다른 딸에게도. 노엘.
매우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처음 수용소에 그녀가 들어 온 날. 난 그녀의 세포가 나에게 반응할 것이란 사실을 직감하고 계획을 변경했다. 단순한 붕괴가 아닌, 끝없이 나락에 빠지는 캐드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러한 계획으로.
하지만 난 결국 두 딸에게 상처만 준 못된 애비일 뿐이었다.

“미안하단다.”



14. 다시 일상으로.


“그 때 바로 탕!”
노파가 종업원에게 말했다.
“총성이었지. 껄껄껄”
노파는 나쵸를 한입 베어 물었다.
“하하, 그럼 캐드만 위원은 저기 살아계시니 노엘은 죽은 건가요?”
종업원이 웃으며 노파에게 말했다. 그 때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동양인 여자 둘이 들어왔다.
“노엘씨~”
하나와 도리였다.
“앗, 사장님... 잠깐... 노엘...!?”
“어쩐 일인지... 죽질 않더구먼.”
노엘은 가슴 위에 난 총알자국을 보여주며 말했다.
“또! 또! 또! 뭐 자랑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다녀요!”
도리가 노엘을 타일렀다.
“너도 나이 먹어봐라. 옛날이 그리울 게다. 껄껄”
하나가 프로젝터를 보며 말했다.
“또 엘리자베스씨 인가요?”
“그러게 말이다. 저 양반도 나이가 있고, 네로 그 노인네 랑도 한참 싸울 터인데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구먼.”
노엘이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자, 그럼 아버지 모셔놓은 곳에도 들려야 하고, 마츠이시 그 노인네도 만나야 하니 출발해볼까!”
“잠시 만요!”
종업원이 황급히 일어나 그녀의 뒤에서 불렀다.
“문제의 답은 무엇이죠?”
“그거야...”
노엘이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보았다.

“나도 모르지. 껄껄껄”

노엘은 그 웃음을 뒤로 한 체 주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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